클래식의 언어로 미래를 말하다

메르세데스-벤츠가 브랜드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는 쇼카 ‘비전 아이코닉(Vision Iconic)’을 선보였다. 이번 콘셉트는 단순히 전기차의 미학을 탐구한 결과물이 아니라, “과거의 감성을 현대 기술로 번역한 조형 실험”이다. 전면부의 직립형 크롬 그릴은 W108, W111, 600 풀만 등 전설적인 모델들의 실루엣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이 전통적 형식은 더 이상 냉각을 위한 구조가 아닌, 디지털 조명을 품은 ‘아이코닉 그릴(Iconic Grille)’로 재탄생했다. 유리 격자와 빛의 패턴이 결합된 그릴은 ‘기계와 감성의 융합’을 상징하며, 보닛 위 삼각별 엠블럼은 빛으로 숨을 쉬듯 점등되어 디지털 시대의 상징으로 거듭났다.
‘하이퍼 아날로그’, 기술보다 감성에 초점을 맞추다

비전 아이코닉의 실내는 단순한 자율주행 공간이 아닌 ‘시간이 멈춘 라운지’를 지향한다. 벤츠는 이를 ‘하이퍼 아날로그(Hyper-Analog)’라 부르며, 기술이 주인공이 아닌 ‘느낌의 복귀’를 강조한다. 1930년대 아르데코 양식에서 영감을 받은 인테리어는 황동 손잡이, 자개 인레이, 딥 블루 벨벳 시트로 구성되어 있고, 대시보드 중앙에는 유리 구조물 ‘제플린(Zeppelin)’이 떠 있다. 그 안에는 정교한 아날로그 시계 애니메이션과 디지털 인디케이터가 공존하며, 마치 고전 오르골 속 톱니바퀴처럼 유려한 움직임을 보인다. 바닥의 짚 마케트리(straw marquetry)와 유리 속에 떠 있는 벤츠 엠블럼은 ‘움직이는 예술품’이라는 콘셉트를 완성한다.
태양광, 뉴로모픽, 그리고 레벨4 — 기술의 세 기둥

비전 아이코닉은 예술적 감성을 담고 있지만, 동시에 차세대 기술 실험의 플랫폼이기도 하다. 차체 전체를 덮는 ‘솔라 페인트(Solar Paint)’는 단순한 도색이 아니라 박막형 태양광 셀이다. 햇빛을 흡수해 연간 최대 1만 2,000km 주행분의 전력을 생성할 수 있으며, 희토류 없이 제작되어 재활용 효율이 높다. 두 번째 혁신은 ‘뉴로모픽 컴퓨팅(Neuromorphic Computing)’이다. 인간의 신경망 원리를 모방한 연산 구조로, 기존 대비 전력 소모를 90% 줄이면서도 반응 속도는 10배 빠르다. 이 기술은 차량이 스스로 도로 상황을 학습하고, 보행자나 표지판을 즉각 인식하도록 돕는다. 세 번째 축은 ‘스티어-바이-와이어(Steer-by-Wire)’ 시스템이다. 조향축을 전자 신호로 대체해, 후륜 조향과 연동하여 좁은 공간에서도 유연하게 회전할 수 있게 한다. 이 세 가지 기술은 레벨 4 자율주행과 무인 주차 기능의 기반이 된다.
럭셔리 쿠페의 부활, S클래스의 미래를 예고하다

비전 아이코닉은 단순히 ‘쇼카’가 아니다. S클래스 쿠페 단종 이후 공백이 생긴 대형 럭셔리 쿠페 시장을 겨냥한 디자인 리더십의 선언문이다. 공식적으로는 전기차 콘셉트로 소개됐지만, 업계에선 “벤츠가 전기와 내연기관을 병행한 새로운 세대를 준비 중”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양산으로 이어진다면, 이 모델은 전기 파워트레인과 V8 내연기관이 공존하는 ‘트랜지션 모델’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고든 바그너는 “비전 아이코닉은 기술을 감추고 감성을 드러내는 자동차”라고 말하며, 향후 벤츠 디자인이 ‘하이테크보다 하이센스(High Sense)’에 초점을 맞출 것임을 시사했다.